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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신규상장 내리막…씨 마르는 혁신기업

올해 통틀어도 58곳 그치고
지난해 110곳 크게 밑돌 듯
혁신 생태계 쇠퇴 우려 커져

  • 이덕연 기자
  • 2025-09-28 15: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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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가 급락한 2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코스닥 종가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올해 코스닥 시장에 신규 입성하는 기업 수가 평년과 비교해 절반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배경으로는 높아진 심사 문턱과 벤처 투자 감소에 따른 혁신 생태계 쇠퇴가 꼽힌다. 그동안 다수의 벤처·스타트업이 코스닥 상장을 전제로 투자를 받아온 만큼 신규 상장 위축에 따라 초기 단계의 벤처 투자가 덩달아 얼어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코스닥 시장에 새로 상장한 기업은 58개로 연말이 되더라도 지난해 집계치인 110개를 크게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심사 당국의 예비 심사를 통과하고 증권신고서를 제출해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과 공모주 청약·배정 등 이후 절차를 앞둔 기업은 7곳에 불과하다. 현행 규정상 증권신고서의 효력은 신고 후 15영업일이 지난 뒤 발생하고 이후 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이 최소 한 달인 점을 고려하면 연간 코스닥 신규 입성 기업의 감소는 확실시된다.

코스닥은 혁신 기술 기업이 기업공개(IPO)와 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주요 통로 역할을 해왔다. 신규 상장기업은 2022년(111개)과 2023년(114개) 모두 100개를 넘겼다. 2018년(90개), 2019년(96개), 2020년(84개), 2021년(99개)에도 보통 90개를 웃돌아 올해 상장기업이 최근 10년 사이 최저 수준을 기록할 가능성이 커졌다. 다수의 스타트업은 일정 기간 내 증시에 오르는 적격상장(Q-IPO)을 전제로 투자금을 유치하고 있어 신규 상장 위축으로 인해 국내 신산업 생태계에도 ‘비상등’이 켜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건수 전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DSC인베스트먼트 대표)은 “코스닥 시장은 투자사가 모험자본을 회수하는 주요 통로”라며 “벤처·스타트업 투자가 줄면 국내 신산업 생태계가 쇠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경제DB

"키울만한 벤처 없다" 지갑 닫은 VC


코스닥 시장에 신규 입성하는 기업 숫자가 올해 전례 없이 줄어드는 데는 일차적으로 높아진 상장 심사 문턱이 배경으로 꼽힌다. 매출 전망치를 과다 집계했다는 의혹을 받은 ‘파두 사태’ 이후 심사 기관은 더 깐깐한 잣대로 상장 추진 기업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여기에 벤처 투자 위축으로 IPO를 시도할 수 있는 기업군 자체가 줄어든 것도 보다 근본적인 배경으로 지목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날까지 코스닥 신규 상장을 마친 기업은 58개, 현재 상장 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은 7곳에 불과하다. 연말이 돼도 100개를 밑돌 것이 유력해 74개였던 2017년 이후 8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1996년 출범한 코스닥은 국내 유망 기술기업이 IPO나 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주요 시장으로 기능해왔다. 한때는 스타트업이었던 국내 정보기술(IT) 공룡 네이버의 전신 NHN을 비롯해 카카오, 셀트리온, CJ ENM,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이 모두 코스닥을 통해 증권시장에 첫발을 들였다.

코스닥 신규 상장이 급격하게 위축된 표면적인 원인은 상장 기준 상향에 있다. 2023년 상장한 파두가 증권 신고서상 매출 전망치보다 크게 낮은 매출을 기록하고 주가가 급락하자 금융 당국은 IPO 규제를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꾸준히 손질해왔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술·사업 잠재력만으로 상장하는 기술특례상장 기업이 부실화하면 투자자들이 상장을 주관한 증권사에 주식을 되팔 수 있도록 했고 최근에는 상장 이후에도 기관투자가가 일정 기간 주식을 보유하도록 강제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신설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제도 개편에 더해 심사 전담 기관인 한국거래소의 심사 자체가 까다로워졌다고 본다. 상장 추진 기업은 IPO를 진행하기에 앞서 거래소 예비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 심사가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기업을 중심으로 어려워지다보니 상장 시도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거래소는 매출·시가총액 등 외형 요건에 더해 기업의 영업 지속성이나 내부통제 등을 평가하는 질적 심사를 진행한다. 한 증권사 IPO본부장은 “질적 심사 기준이 최근 1~2년 들어 크게 높아지다보니 섣불리 상장을 시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제도 변화보다 영향이 큰 것이 심사 기준 상향”이라고 진단했다.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 전경. 사진 제공=한국거래소


이런 업계의 시각은 통계상으로 확인된다. 지난해 거래소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미승인 조치를 받거나 심사를 자진 철회한 기업은 38개다. 2022년(30개)과 2023년(20개)과 비교해 확연히 많은데 심사 신청 기업 대비 미승인·철회 비율도 높게 나타났다. 올해는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기업 숫자가 줄어들었지만 이는 상장 주관사가 한층 까다로워진 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운 기업을 애초에 예비 심사 신청 대상에서 배제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코스닥 상장 위축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스타트업 생태계 쇠퇴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소벤처기업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처 투자 금액은 5조 6780억 원으로 고점이었던 2022년 상반기(7조 6442억 원)와 비교해 크게 줄었다. 벤처 투자액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동성이 풀렸던 2021~2022년 일시적으로 늘어난 뒤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수의 스타트업은 벤처캐피털(VC) 등 투자사의 자금에 의존해 사업을 확장·고도화한다. 투자 감소가 스타트업 경쟁력 감소로 직결되고 이는 상장을 시도할 수 있는 기업군 자체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인공지능(AI) 기반 슬립테크(수면 기술) 기업 에이슬립을 창업해 SK텔레콤·현대건설·삼성생명·세라젬 등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이동헌 에이슬립 대표는 “사업을 시작한 후 기술 개발을 완료해 제품을 내놓고 매출과 이익을 실현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며 “모험자본 투자 없이 테크(기술)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신산업 대상 투자가 줄어들다 보니 신규 창업도 덩달아 위축되고 있다. 중기부 통계에 따르면 스타트업 창업이 활발한 정보통신업에서 지난해 신규 설립된 기업은 4만 481개로 2023년(4만 4870개)과 비교해 9.8% 감소했다. 투자 감소에 따라 파산을 신청하는 기업도 늘어나 지난해만 1940개 기업이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이는 2023년(1657개) 대비 17.1% 늘어난 수준이다.

김학균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퀀텀벤처스코리아 대표)은 “코스닥 신규 상장이 위축되면 VC 등 투자사는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길이 막혀 투자를 축소하고 그 결과 신산업 생태계가 망가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며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신산업을 살려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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