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지주사인 두산이 올 들어 주요 계열사 보유 지분을 담보로 1조 원의 현금을 조달했다. 시장에서는 두산이 대규모 인수합병(M&A)을 고려한 사전 준비작업으로 해석하고 있다.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두산은 올 2분기 보유 중이던 두산로보틱스 지분과 두산에너빌리티 지분을 담보로 각각 5500억 원과 3600억 원의 대출을 일으켰다. 또 일반 신용대출로 900억 원을 추가로 마련했다. 총 1조 원의 신규 자금이 유입되면서 올해 2분기 별도 기준 두산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는 1조 2385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 말 두산의 현금 규모는 1486억 원이었고 올해 1분기에는 963억 원이었다.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30.4%, 두산로보틱스 지분 68.2%를 보유 중이다. 두산로보틱스와 두산에너빌리티는 각각 올해 국내 증시를 달군 로봇, 소형모듈원전(SMR) 테마 종목으로 분류된다. 두 종목 모두 6월을 기점으로 주가가 상승세를 탔다. 두산이 주식담보대출을 일으킨 구체적인 시점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보다 유리한 담보 비율을 가져가기 위해 주가 상승 국면에 대출을 일으켰을 것으로 점쳐진다.
IB업계에서는 두산이 단기간에 보유 현금을 늘린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M&A 시장의 대표적인 잠재 인수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지주사 차원에서 조 단위 자금을 끌어왔다는 점은 특이사항”이라며 “그동안 두산그룹이 시장에 보여준 인수 의지를 볼 때 대형 M&A 자금 조달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두산그룹은 2021년까지 이어졌던 대대적 구조조정을 마무리짓고 적극적인 인수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도체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신규 M&A를 추진하다 현재는 중장비, 로봇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두산그룹 M&A의 출발점은 두산포트폴리오홀딩스가 2022년 인수한 반도체 테스트 전문기업 두산테스나였다. 2024년 초에는 두산테스나를 통해 반도체 후공정을 담당하는 엔지온을 사들였다. 같은 해 반도체 디자인하우스 세미파이브 인수에 근접했지만 막판에 거래가 무산되기도 했다.
두산밥캣은 지난해 유압기기 제조사 두산모트롤을 다시 인수했다. 두산모트롤은 본래 두산그룹 계열사였지만 2020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소시어스프라이빗에쿼티와 웰투시인베스트먼트에 매각됐다. 방산부문을 제외한 민수부문만을 되사온 것이다. 올해 들어서는 로봇사업 확장을 위한 M&A에 힘을 주는 모습이다. 올 7월 두산로보틱스는 미국 로봇 시스템통합·자동화 솔루션 기업 원엑시아 지분 89.59%를 356억 원에 사들였다.
두산그룹은 물밑에서 수천억 원대 중대형 매물을 지속적으로 물색 중이다. 그룹 성장 동력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과감하게 투자금을 동원하겠다는 기조로 전해졌다. 자금 조달 이유에 대해 두산 관계자는 “전자BG의 설비투자, 신성장 동력 확보,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을 대비하기 위한 선제적 유동성 확보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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