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중국한테 따라잡히게 생겼는데 주주 환원율을 76%로 올리겠다는 것은 주식시장을 미국처럼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기업과 경제 다 망합니다.”
장하준(사진) 런던대 경제학부 교수는 5일 화상으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 창간 65주년 특별 인터뷰에서 “미국은 지난 25년 동안 주주 환원율이 거의 100%로 기업이 투자할 돈이 없다”면서 “주식시장을 통해 들어온 돈보다 주주들에게 나간 돈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진보 진영에 속하면서 정부의 시장 개입을 주창한 케인스학파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다. 재벌과 사회의 대타협을 통한 복지국가 건설은 25년간 그의 주제였다.
장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 벌어지는 주주권 강화 논쟁에서 중간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주주가 과도하게 주주권을 행사한 것은 제지해야 하지만 주주의 몫에 선을 긋지 않으면 국가 경쟁력까지 잃게 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그는 보잉과 제너럴모터스(GM)의 몰락과 그로 인한 미국 제조업의 공백, 경제 전반의 부실을 대표적인 사례로 짚었다.
장 교수는 실리콘밸리 혁신 기업의 성장에도 주주권 강화보다는 창업자 보호의 역할이 컸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글의 지주사 알파벳이나 페이스북·메타·우버 전부 차등의결권이 있다”면서 “애플도 고(故) 스티브 잡스가 경영할 때는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을 안 하고 그 돈으로 기술을 개발해 1위 기업이 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정부 경제정책의 한 축인 주주권 강화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주주권을 너무 확대하면 제조업이 무너진 미국 같은 꼴이 난다. 지금 제대로 투자하고 산업 정책을 만들지 않으면 중국에 먹힌다. 미국에 압박당하는 중요한 시기인데 갑자기 왜 기업에서 돈을 빼 주주들이 나눠 쓰자는 얘기가 나오나.
일반적으로 주주권이 강화되면 기업이 장기 투자하기는 힘들다. 미국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전 세계 제조업의 60%를 차지했다. 1980년대 주주권이 강화된 후 지금은 16%밖에 안 된다. 산업 생태계가 파괴돼 생산성이 나지 않는다. 노동자 기술도 떨어지고 이들을 교육시키는 교육기관, 하청 업체, 연구 대학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망가졌다.
보잉과 GM이 예전에는 당할 자 없는 기업이었는데 10년 이상 엄청나게 자사주를 매입하면서 투자를 못 하니 망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지금 돈을 배당으로 풀 때가 아니다.
-주주권을 강화하면서도 기업의 투자 여력을 해치지 않는 대안이 있는가.
△정부가 선을 그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사주 매입이 그해 이윤의 10% 이상을 넘지 않게 하든지, 주주 환원율을 5년 평균 내서 50%를 넘지 않도록 못 박아야 한다. 그러면 주주권도 강화하면서 대주주가 전횡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주주권 강화는 재벌가의 전횡, 코리아 디스카운트, 부동산으로 투자금이 몰리는 것도 푸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주주권 강화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혁신 기업 초기 투자자가 위험을 감수한 만큼 주주권을 보호받아야 투자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주주 자본주의의 산지라고 하는 미국에서도 1982년까지는 자사주를 매입하면 경영진이 배임으로 소송당하기 쉽게 만들어놓았었다. 그것을 풀면서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올라가고 미국 기업이 거덜 난 것이다.
소위 혁신 기업들은 ‘1주 1표’식의 주주 자본주의를 하지 않는다. 지금도 (창업자가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차등의결권이 존재한다.
애플 역시 잡스가 경영할 때는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을 안 하고 그 돈으로 기술을 개발해 1위 기업이 됐다. 기술에 대한 비전이 없는 팀 쿡이 들어온 후 자사주 매입으로, 말하자면 주주들을 매수한 것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일본의 주주권 강화에 주목하며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일본의 주주권 강화가 제조업 약화로 이어지리라 보는가.
△최근의 주주들은 법적으로는 회사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자본 이외) 기업에 대한 기여는 하나도 없다. 영국도 주주들이 1년 안에 돈이 안 나오면 팔고 떠난다. 1960~1970년대만 해도 평균 5년을 보유했지만 주주들이 점점 단기화됐다.
미국 같은 경우는 지난 25년 동안 주식시장이 기업에서 돈을 빼가는 메커니즘이 됐다. 얼핏 생각하면 주주들이 투자를 많이 하면 기업은 투자금이 많아지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우리나라의 세제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니다. 총조세를 명목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조세부담률은 우리나라가 30%이고 OECD 평균은 34%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나라의 경우 미국 빼고는 35~45% 수준이 된다. 저는 한국이 복지 지출을 늘리기 위해 조세부담률이 더 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조세 부담의 가성비다. 예를 들어 파라과이는 법인세율이 10%이고 독일은 30%다. 파라과이는 세금을 적게 낼지 모르지만 치안도 안 좋고 노동자 교육도 돼 있지 않고 인프라가 안 좋으니 비싼 돈을 내고 독일에 가서 사업하는 것이다.
덴마크는 조세부담률이 45%이고 부가가치세도 25%인데 국민의 90%가 지금 내는 세금에 만족한다고 한다. 좋은 복지 제도로 보장이 되고 안심하고 살 수 있으니 세금을 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법인세·배당소득세·상속세 등을 통해 대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해 과세해야 한다는 방향인데.
△기본적으로 부자들이 더 많이 내는 누진세 제도는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부자만 세금을 많이 내서는 조세를 올릴 수 없다. 또 갑자기 너무 올리면 부작용이 있다. 지금 하듯 배당소득·양도소득·법인세를 갖고 세금도 올리고 지배구조도 개선할 수는 없다.
법인세는 기업이 정부가 제공하는 교육·인프라·외교 등 공공서비스에 대해 돈을 내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돈을 내는데 서비스가 안 좋다고 하면 세율을 낮추는 게 좋다.
-한국과 미국 간 타결된 관세 협상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관세 협상이라는 게 얼마나 구속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있는데도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그것을 완전히 무시했다. FTA는 각국 의회가 비준을 하는 준헌법적인 것이지만 관세는 그냥 양국 대표의 합의일 뿐이다.
이미 인플레이션이 올라가기 시작하고 있다. 물가가 치솟으면 미국인들이 물가와 트럼프(의 관세정책)를 바꿀 수 있다. 내년 11월이 중간선거인데 올겨울부터 인플레이션이 오르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공화당을 찍겠는가. 그러면 관세정책은 원점에서 검토할 수 있다.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든 아니면 공화당에서 온건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이번 협상은 무의미해지고 상식이 있는 정부라면 재협상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세부 협상을 할 때 우리 이익에 맞는 것은 하고 아닌 것은 (인플레이션이 본격화 할) 내년 여름까지는 미뤄야 한다. 예를 들어 조선 산업도 한화그룹은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것이니 빠르게 진행하면 되지만 (제철소를 짓는 현대자동차그룹처럼) 다른 경우는 (한국이 투자하기 위해) 부지 설정하고 계약을 맺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다.
지금은 세계 각국이 놀라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 바뀔지 모르고 이행할 필요도 없는 것들이다. 미국 경제가 굉장히 약점이 있기 때문에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관세 협상 과정에서 우리 기업이 역할을 하면서, 국가 주도의 산업 정책을 강화할 계기가 됐다. 이재명 정부의 산업 정책을 어떻게 보는가.
△IMF 외환위기 이후 25년간 우리나라 산업 정책이 약화됐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부활할 수 있다. 미국이 압박해서 우리 기업에 돈을 뜯어내고 중국이 무섭게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기술 혁신 중심의 산업 정책을 펼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국에서는 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우고 저임금 국가나 미국으로 기업을 옮길 것은 옮기는 경제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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