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소속된 미국 벤처캐피털(VC) 1789캐피털이 한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다. 아시아 지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1789파트너스를 설립하고 한국에 사무소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미 행정부와의 밀접한 관계로 주목받고 있는 1789캐피털이 한국을 글로벌 확장의 교두보로 삼은 것이다.
2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1789캐피털은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어센트에쿼티파트너스(EP)의 박병은 전 대표를 1789파트너스 대표로 선임하고 강남 역삼동 모처에 사무실을 마련 중이다. 1789파트너스의 초대 수장이 된 박 대표는 짧은 기간 내 어센트EP의 운용자산(AUM)을 1조 원 수준으로 키운 ‘딜 메이킹’ 능력을 인정받아 낙점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일본을 비롯해 주요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한 점도 높게 평가됐다.
1789캐피털은 성장성이 높은 기업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전략을 취한다. 최근 미국 정부와 연계된 방산·우주기업에 집중 투자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이번 한국 진출 역시 동아시아 산업군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확대를 노린 행보로 해석된다. 지난해 말 기준 AUM은 10억 달러이며 내년까지 50억 달러로 늘리는 게 목표다.
1789파트너스는 모회사 1789캐피털이 아시아 전역으로 투자 범위를 확장하고 자금 조달 창구를 다각화하기 위해 신설한 회사다. 한국은 물론 대만과 일본의 투자 자금을 흡수하는 조 단위의 대규모 펀딩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막강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역에서 굵직한 인수합병(M&A) 거래에 적극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주니어는 트럼프그룹의 글로벌 신규 프로젝트 개발을 총괄하다 지난해 11월 1789캐피털 파트너로 합류하며 주목받았다. 투자처 발굴과 자본 조달, 전략 구상 등의 업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B 업계 관계자는 “1789캐피털은 미국 보수 진영과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한 인물들이 얽혀 있는 회사로,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것으로 안다”며 “특히 한국을 아시아 투자 전략의 거점으로 삼는다는 점은 국내 투자 환경에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789캐피털의 한국 사무소인 1789파트너스는 단순히 아시아 진출을 위한 지사 차원을 넘어 글로벌 전략을 실행하는 핵심 전진기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1789캐피털이 미국 내 정치·경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투자 철학을 구축해왔다면 1789파트너스는 이를 아시아 시장 전반으로 확장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된다.
한국은 1789캐피털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시장으로 꼽힌다.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기업들이 밀집해 있을 뿐 아니라 미국과 아시아 주요국을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789파트너스는 이러한 강점을 기반으로 아시아 지역의 자금 조달과 투자 포트폴리오 운영을 총괄할 계획이다. 한국에서도 올 4월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방한했을 당시 만남을 가진 기업들이 1789캐피털에 출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신세계그룹을 비롯해 롯데·CJ·GS·한화·셀트리온·네이버 등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트럼프 주니어와 면담하며 출자 참여 여부를 논의했다.
1789파트너스의 모회사인 1789캐피털은 글로벌 IB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출신의 오미드 말릭이 2022년 창업한 벤처투자사다. 1789캐피털은 ‘탈세계화’ ‘안티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며 독자적인 투자 철학을 강조해왔다. ESG 선도 기업 등 ‘착한 기업’에 투자하기보다는 실질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기업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게 이들의 전략이다.
1789파트너스의 투자 키워드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혁신(Innovation), 성장(Growth)을 뜻하는 ‘EIG 투자’다. 사회적 낙인으로 저평가된 알짜 기업이나 관료주의로 인한 규제에 묶여 성장성이 억제된 테크 기업 등이 이들의 주요 투자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는 지난해 11월 1789캐피털의 파트너로 전격 합류했다. 창업자 중 한 명인 크리스토퍼 버스커크는 보수 진영의 대표적 칼럼니스트이자 정치 후원 단체 록브리지네트워크의 공동 설립자로 미국 정가에서 막후 실세로 불린다. 또 다른 창업자인 리베카 머서는 미국 보수 진영의 거물급 투자자로 1789캐피털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1789캐피털은 미국 정부와 연계된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스페이스X 투자가 대표적 사례다. 스페이스X는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과 계약을 맺고 미국의 군사·안보 관련 우주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있다. 1789캐피털은 스페이스X를 포함해 머스크 소유 회사에 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밖에 폭스뉴스 앵커 출신의 강경 보수주의자인 터커 칼슨의 미디어 브랜드 라스트컨트리에 1500만 달러를 투자했고 미 공군과 계약한 로켓 기업 파이어호크에어로스페이스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온라인 복제약 유통 업체인 블링크헬스에도 저평가 회사라는 판단 하에 과감히 투자하는 등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국내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1789캐피털의 한국 진출이 단순한 사무소 개설을 넘어 아시아권 자금 유입과 대형 거래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IB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치·경제 네트워크와 연계된 글로벌 투자 자금이 한국 스타트업과 중견기업에 직접 유입되면 국내 인수합병(M&A) 시장 흐름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789파트너스의 초대 수장으로 선임된 박병은 대표는 어센트EP에 몸담았을 당시 SK텔레콤이 투자한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사피온을 비롯해 피부재생 전문 기업 엘앤씨바이오, 의료기기 업체 원텍, 색조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사 씨앤씨인터내셔널 등의 다양한 투자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자본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해외 투자도 활발히 진행했다. 미국 AI 기업 그록과 일본 치과 기기 업체 시프메디컬 등이 대표적이다. 박 대표는 이번에 1789파트너스로 자리를 옮기면서 투자 영역을 아시아 전역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됐다.
박 대표 외에 1789파트너스의 초기 멤버 구성도 눈길을 끈다. 이지훈 전 한국경제신문 베이징 특파원과 김진수 호주 에디스코완대 겸임교수 등이 1789파트너스의 창립 멤버로 합류한다. 이 전 특파원은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하며 금융·자본시장 취재 경험을 기반으로 회사의 PR 전략을 책임진다. 김 겸임교수는 서울대 운동생리학 석사, 보건의학 박사 학위를 보유한 전문가로 행정 업무와 함께 바이오 투자 심사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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