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금융사들의 ‘국고채 입찰 담합 혐의’로 발생한 국고 손실액 규모를 제대로 산출하지도 않은 채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재 방안을 추진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19일 서울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공정위가 국채투자매매업 전문 금융기관(PD) 15곳에 발송한 심사보고서에는 PD사들의 입찰 정보교환 여부에 따라 발생할 국고 손실액 규모를 정확히 명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는 심사보고서에 “국고채 낙찰금리가 높아지면 발행가격이 낮아져 PD사(피심인)들이 정부에 납입하는 발행 대금이 줄어 국고에 손실이 발생한다”면서도 “그러나 PD사들의 정보교환이 없었을 때 결정됐을 낙찰금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국고 손실액을 산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정보교환 행위와 낙찰금리의 연관성을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고 단순히 ‘가정’만으로 공정위가 제재에 착수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일부 PD사들은 공정위의 제재 의견이 확정돼 소송 등 공동 대응에 나설 경우 이를 근거로 적극적인 변론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한 PD사 관계자는 “정보교환으로 낙찰금리가 얼마나 높아졌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단순히 ‘낙찰금리가 1bp(bp=0.01%포인트) 상승했을 경우’ 같은 상황을 가정해 추정치만 언급돼 있다”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공정위의 국고채 담합 주장을 정면 반박하고 있다. 올해 3월 공정위로부터 심사보고서를 받기 전부터 이미 낙찰금리가 시장금리보다 낮았기 때문에 국고채 금리 담합으로 정부가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낙찰금리가 낮을수록 정부는 국고채 이자비용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올 2월 24일 국고채 5년물 입찰에서 낙찰금리(2.660%)는 시장금리(2.715%)보다 0.055%나 낮았다. 반면 3월 24일 5년물 입찰에서는 시장금리(2.683%)와 낙찰금리(2.680%)가 비슷한 수준(0.003%)이 됐다. 같은 달 25일 20년물 입찰에서는 낙찰금리와 시장금리는 2.700%로 동일하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임원은 “공정위 심사보고서가 송달된 전후 국고채 입찰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며 “PD사들이 소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오히려 낙찰금리와 시장금리가 유사해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일명 ‘경제성 분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불만도 나온다. 또 다른 금융투자 업계 임원은 “특정 행위로 인해 금융사가 어떤 부당 이익을 취했는지 규모나 관련 배경 설명도 명확히 포함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와 관련해 기획재정부와도 전혀 의견 교환이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고채 담합 의혹의 주요 쟁점은 금융사들이 입찰 과정에서 금리 정보를 교환했는지, 이로 인해 가격(금리) 담합이 이뤄졌는지 여부다. 정부는 국고채 경쟁입찰에서 낮은 금리를 제출한 PD사부터 낙찰하는데 PD사들이 사전에 금리 정보 등을 교류해 이익을 도모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반면 증권사는 단순히 시장 상황에 대한 의견을 공유한 것뿐이며 오히려 이번 제재로 PD사의 움직임이 위축돼 올해 200조 원이 넘는 국고채 발행 계획에 차질을 줄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PD사들이 중간에서 시장 조정 역할을 하지만 실제 마진은 거의 없는데 앞으로 어느 증권사가 국고채 인수에 나서겠냐는 불만이다.
실질 수익이 아닌 국고채 인수액 전체를 관련 매출액으로 보는 것도 이례적이라는 입장이다. 내년 4월 한국 국채가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을 앞둔 상황에서 채권시장이 위축돼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공정위로부터 심사보고서를 받은 PD사 15곳은 다음 달 27일까지 공정위에 의견서를 낼 예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산정한 입찰 관련 매출액은 약 76조 원이며 매출액의 10~1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이 제재안이 확정되면 과징금은 약 7조~1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주요 국고채 PD사인 KB증권이나 메리츠증권은 매출액 규모가 커 과징금 규모도 각각 약 2조 원 안팎에 달할 수 있다. 증권사의 한 임원은 “종합투자계좌(IMA) 사업자를 신청할 수 있는 증권사가 자기자본 규모 8조 원 이상인데 과징금이 이에 맞먹는 수준”이라며 “자기자본 규모가 작은 중소형사는 사실상 망하라는 이야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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