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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SK엔무브 상장 '전면 철회' 검토

◆자본시장 체질변화 본격화
정부 '중복상장 금지' 기조 등에
SK이노 내일 이사회…포기 수순
FI 보유 지분 '재매입' 가능성도

  • 이덕연 기자
  • 2025-06-24 17:2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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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CI. 사진제공=SK


SK그룹이 지난해부터 추진한 SK엔무브 기업공개(IPO) 계획을 전면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SK엔무브는 SK이노베이션이 지분 70.0%를 보유한 자회사로 예정대로 증시에 오르면 모회사 주주 권익 훼손에 대한 중복 상장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SK그룹이 소액주주 권리 보호를 강조하는 정부 정책 기조를 의식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재계에 미치는 영향도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와 여당이 주주 권한 확대를 기치로 내걸고 법 개정을 추진하자 중복 상장, 유상증자, 기업 분할 등에 있어 대주주 중심 경영을 견제하는 움직임이 늘어나는 추세다.

2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은 SK엔무브 상장 계획을 접고 재무적투자자(FI)인 IMM크레딧솔루션(ICS)이 보유한 지분 30.0%를 약 9000억 원에 되사오는 방안을 유력하게 논의 중이다. 이르면 25일 열리는 SK이노베이션 이사회에서 관련 계획을 논의해 방침을 확정한다.

상장 철회의 배경으로는 중복 상장 논란에 따른 부담이 지목된다. IB 업계 관계자는 “연초부터 시장에서 중복 상장 논란이 컸는데 현 정부와 여당은 아예 관련 규제를 명문화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예정대로 IPO를 추진하면 새 정권의 정책 기조에 맞서는 모양새가 돼 부담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21년 SK엔무브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내년까지 증시에 입성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에 IPO가 무산되면 FI에 재무적 보상을 해야 한다. 이에 아예 상장 계획을 접고 FI 보유 지분을 모두 되사온 뒤 다른 계열사와 합병하는 방안 등의 시나리오를 두고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SK그룹 관계자는 “현재 SK엔무브와 관련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며 확정된 것은 없다”고 전했다.

SK의 결정은 재계 및 자본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주요 계열사를 상장시켜 자금을 확보하고 사업을 확장해온 기존 시장 공식이 깨지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소액주주 권한을 확대하는 각종 법안을 예고하자 이미 시장에서는 소액주주와 행동주의의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코스닥지수가 상승세로 장을 시작하고 있다. 뉴스1

IPO 통한 외형확장 공식 깨진다


핵심 사업 부문을 떼어내 신규 상장시키고 투자금을 확보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 재계에서 외형 확대를 위한 공식처럼 받아들여졌다. LG화학에서 물적 분할해 2022년 1월 코스피 시장에 오른 LG에너지솔루션은 IPO 과정에서 12조 7500억 원의 공모 자금을 모아 차입금 의존도를 낮추면서도 각종 자본적 지출(CAPEX)을 이어갈 수 있었다. 문제는 유망 사업이 빠져나간 모회사의 주주들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한 후 LG화학의 주가는 한 달 만에 16.6% 빠졌고 현재는 상장일 대비 3분의 1 수준인 20만 원 초반대에 그쳐 있다.

자회사 신규 상장을 통해 외형 확장 동력을 확보해온 산업계가 정부의 규제 강화 예고에 몸을 사리는 모습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기업을 분할해 중복으로 증시에 올리는 ‘쪼개기 상장’을 비판해왔는데 새 정부 출범 이후 관련 규제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자 신규 IPO 계획을 아예 철회하려는 움직임까지 생겼다. 코로나19 이후 부쩍 늘어난 개인투자자도 중복 상장 문제를 주시하고 있어 그동안 핵심 신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해 자금을 모아온 재계의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수의 IB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SK그룹이 SK엔무브 상장 계획 철회를 검토하는 것은 중복 상장 문제에 따른 부담 때문이다. SK엔무브 지분 70.0%를 가진 SK이노베이션은 현재 재무적투자자(FI)인 IMM크레딧솔루션(ICS)으로부터 지분 30.0%를 약 8000억 원 후반에 매입하려는 논의를 진행 중인데 지분 매입이 완료되더라도 당분간 IPO에 나설 계획은 크지 않다. IB 업계 관계자는 “신규 상장이 목표라면 굳이 FI 지분을 되사오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IPO 계획 자체를 철회했기 때문에 과거 계약에 따라 지분을 매입해야 하는 상황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SK엔무브는 지난해부터 증시에 입성하기 위해 심사 당국의 문을 두드려왔다. 지난해 말 미래에셋·한국투자증권을 상장 대표주관사로 선정한 뒤 올 초 한국거래소에 연내 상장 가능성을 타진했다. 하지만 연초부터 중복 상장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거래소가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 주주에 대한 보상 방안을 요구해 IPO 추진 일정이 밀렸다. SK엔무브는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사업 자회사로 영역이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영업이익은 △2022년 1조 712억 원 △2023년 9995억 원 △2024년 6876억 원으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보이고 있다.



국내 대기업집단 다수는 계열사를 중복으로 상장시키며 성장 동력을 확보해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상장 계열사 수는 SK그룹이 21곳, 삼성그룹이 17곳이다. 이 외에도 현대백화점그룹(13곳), LG그룹(12곳), 한화그룹(12곳), 현대차그룹(12곳), 롯데그룹(11곳) 등의 계열사 다수가 중복으로 증시에 올라 있다. IBK투자증권이 지난해 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중복 상장 비율은 18.43%로 일본(4.38%), 대만(3.18%), 중국(1.98%), 미국(0.35%)에 비해 현저히 높다. IPO를 통한 자금 유치가 일반적이다 보니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 때 일정 기한 내 상장을 전제로 FI에 자금을 받는 일도 잦다.

IB 업계에서는 중복 상장에 여러 유형이 있다고 본다. 크게 문제가 없는 것은 모회사와 사업 영역이 크게 겹치지 않는 회사를 인수해 자회사로 삼은 뒤 증시에 입성시키는 경우다. 애초에 사업 영역이 달랐던 만큼 자회사 상장으로 모회사 주가가 부정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 반면 사업 영역이 겹치는 자회사를 증시에 따로 올리거나 모회사 핵심 사업 부문을 아예 분할해 떼어낸 뒤 중복 상장시키는 경우에는 부작용이 크다.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쪼개기 상장이라며 비판해온 유형은 마지막에 속한다.

정부·여당은 중복 상장을 방지하기 위한 각종 규제를 마련하고 있다. 사업을 분할해 신규 상장시키는 쪼개기 상장과 관련해서는 모회사 일반 주주에게 중복 상장 기업의 신주를 우선 배정하도록 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전례로는 2023년 자회사 필에너지 IPO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공모주 20%를 기존 주주에게 배당한 코스닥 상장사 필옵틱스가 있다. 이 외에도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일반 주주까지 확대되면 기업가치를 저해할 수 있는 중복 상장 추진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SK엔무브의 상장 계획 철회 및 규제 신설이 완료되면 앞으로 국내 중복 상장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SK엔무브를 비롯해 SK온·SK에코플랜트·SK플라즈마 등의 IPO를 추진해왔고 LS그룹 또한 LS이링크·LS이브이코리아·LS파워솔루션·LS에식스솔루션즈를 증시에 올리려 하고 있다. 한 증권사 IPO본부장은 “정부를 비롯해 시장 참여자들이 눈을 뜨고 지켜보는 상황에서 섣불리 중복 상장에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IPO를 통해 외형을 확장해온 흐름 자체가 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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