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사모펀드(PEF)에 대한 적격성 심사 강화를 공약하면서 업계 고민이 커지고 있다. MBK파트너스가 강행한 고려아연 분쟁·홈플러스 회생 신청으로 인한 후폭풍이 업계 전반에 퍼지는 모양새다. 반면 상법 개정으로 증시 상승과 기존 대주주의 매각 시도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9일 정치권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는 PEF와 이들이 조성한 펀드에 출자하는 기관투자자에 대한 적격성 심사를 강화하고 차입매수를 제한하는 내용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미 국민연금은 조만간 공고할 상반기 출자사 선정 준비 과정에서 PEF의 기존 투자기업이 단지 비용 절감을 통해 수익을 냈는지 여부를 중점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일부 기관투자자는 세무조사나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운용사에 대한 출자금을 확약했다고 하더라도 법원에서 불법이 드러난 경우 출자금을 회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정치권이 홈플러스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한 PEF의 차입매수 역시 규제가 예상된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일 일반사모집합투자기구(PEF)의 차입허용비율을 순자산의 400%에서 200%로 낮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만 이 규제에 대해서는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현장에서는 PEF가 아닌 피투자기업 주식이나 자산 담보가치를 기준으로 최대 60% 선에서 담보대출인 인수금융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 투자의 문제는 부동산 자산을 서둘러 매각한 게 문제였고, 근본적으로 오프라인 대형마트 업황이 나빠지고 있던 시점에 MBK가 비싼 가치로 투자한 것”이라면서 “현재도 PEF의 순자산가치 기준으로 대출이 이뤄지는 경우가 드문데 규제를 강화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민주당은 PEF가 피인수 기업을 인수한 후 무분별한 자산매각에 대한 추가 규제를 예고하고 있어 PEF의 투자 회수에 타격이 될 수 있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홈플러스 관련 토론회에서 “사모펀드의 차입매수는 금융위원회가 자본시장법을 개정하거나 감독지침으로 대응해야 한다”면서 의원 입법을 통한 규제에서는 한 발 물러섰지만 “유럽연합(EU)은 사모펀드가 비상장이나 상장회사의 지배권을 취득하면 24개월 동안 과배당, 자본감소, 자기주식 소각을 하면 안된다고 규제한다”고 소개했다.
PEF가 피인수 기업으로부터 투자금을 조기 회수하기 위해 추가로 주식담보 대출을 받아 배당 형식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이른바 리파이낸싱을 규제해야 한다는 뜻을 에둘러 밝힌 셈이다.
이재명 정부의 또다른 M&A 관련 공약 중 하나는 의무공개매수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더불어민주당 의원 시절 상장사 지분을 25%이상 보유해 최대 주주가 되려면 지분 100%를 공개매수를 통해 인수해야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개매수 가격은 선행매수를 반영하도록 규정해 소액주주에도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된 가격을 따라가도록 했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6개월 내에 정부가 강제 처분을 명할 수 있게 했다.
지난 정부에서도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추진했지만, 최대 주주가 되려면 50%+1주 이상을 공개매수 하도록 설계했기 때문에 강도는 훨씬 약하다.
국회 속기록을 보면 올해 2월까지 이어진 여야 논의 과정에서 강훈식 전 의원의 개정안은 M&A를 통한 산업의 구조조정과 신사업 육성을 막는다는 국민의힘과 금융위원회, 재계 반발에 막혀 있었다. 그러나 새 정부로 들어서면서 강 전 의원 방안에 예전보다 무게가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반대하는 쪽은 지분 100%를 인수해야 한다면 아예 M&A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코스피 상장사의 최대주주 지분율은 평균 31.76%이고 코스닥 상장사는 이보다 낮은 27.93%다. 강훈식 의원안 대로면 상장사 경영권을 인수하기 위해 과거엔 30%만 사면 됐던 경우도 100%를 매수해야 하는 셈이다.
다만 강 전 의원 등은 M&A 활성화보다 중요한 것은 국내 주식시장의 저평가 해소이며 이를 위해 소액주주의 권한 강화를 우선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기업 경영권 거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PEF 업계에서는 예전보다 경영권 인수에 많은 자금이 들어가는 만큼 초대형PEF만 거래를 하거나 상장사 투자를 아예 접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국내에서 PEF 인가를 받지 않고 법인 형태로 활동하는 해외 PEF 운용사는 이 같은 규제를 받지 않아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기관투자자로부터만 출자를 받는 운용사는 국내에 PEF로 등록하지 않으면서 국내 기업에 투자하고 수익에 대한 세금도 해외에 납부한다”면서 “규제 강화 과정에서 역차별 요소가 없는 지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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