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그룹이 제주항공(089590) 지분 약 9%를 담보로 추가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 이는 사실상 그룹이 보유한 제주항공 지분 대부분이 담보로 잡힌 상태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중부컨트리클럽(CC)과 애경산업(018250) 매각을 추진 중인 애경그룹은 제주항공만은 지켜 반등을 꾀할 계획이다. 하지만 제주항공 주가가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며 반대매매(마진콜)로 인해 애경그룹의 제주항공 지배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AK홀딩스(006840)는 지난 5월 28일 신한캐피탈로부터 500억 원의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 담보는 제주항공 지분 8.93%와 애경산업 지분 4.43%다. 이자율은 5.9%이며, 만기는 내년 5월 28일까지 1년이다. 담보 유지 비율은 120%로 설정됐다. 이번 계약으로 애경그룹은 제주항공 지분 거의 전부를 담보로 내놓게 됐다.
지난 3월 말 기준 애경그룹이 보유한 제주항공 총 지분은 53.61%다. AK홀딩스가 50.37%, 애경자산관리가 3.22%, 임원진 네 명이 0.01%를 보유한다. 이 중 주식담보대출 계약이 체결된 지분은 50%에 달한다. 3.61%를 제외하고는 모두 은행, 증권사, 캐피탈사 등에 담보로 잡혔다. 주식담보대출로 잡힌 지분은 지주사인 AK홀딩스 47.5%, 애경자산관리 1.9% 등이다. 이 외에 AK플라자는 직접 제주항공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애경자산관리 지분 0.6%를 담보로 주식담보대출을 받기도 했다.
제주항공 주식담보대출로 AK홀딩스 등이 마련한 금액은 총 2608억 원이다. 이는 6월 2일 종가 기준 제주항공 시가총액 5330억 원의 절반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AK홀딩스가 2335억 원으로 가장 많고 이자율은 4.9%에서 6.3%에 분포한다. 담보권자는 하나은행, NH농협은행, KB증권, NH투자증권, 신한캐피탈 등이다. 다음으로 애경자산관리 150억 원(5.3%~5.6%), AK플라자 123억 원(5.68%) 순이다. 애경자산관리 지분 담보는 국민은행과 케이프투자증권 등이, AK플라자는 국민은행이 갖고 있다.
문제는 제주항공 주가 부진이다. 주식담보대출은 담보 유지 비율을 요구하는데 주가가 하락해 이를 하회하면 담보권자는 계약에 따라 추가 증거금을 요구한다. 증거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반대매매가 불가피하다. 제주항공 주가는 연일 하락세다. 지난해 6월만 해도 1만 1000원대를 유지하던 주가는 이달 2일 6620원에 마감했다. 지난 4월 15일 6340원으로 52주 신저가를 기록한 후 이렇다 할 반등 움직임이 없다. 주가가 추가로 하락할 경우 반대매매 압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IB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애경그룹의 제주항공 지분율이 과반이 넘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확보 중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반대매매가 나올 경우 지배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달부터 연말까지 애경그룹은 제주항공 주식담보대출 만기가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 현재 총 14건의 주식담보대출이 설정되어 있는데, 올해 안에 만기를 연장해야 하는 주식담보대출이 절반인 7건이다. 현재보다 주가가 2배 이상 높던 때 맺었던 계약이라 현재 주가 수준이 계속된다면 주식담보대출 일부를 상환하거나 추가 담보를 내놓아야 한다.
현재 애경그룹은 중부CC와 애경산업을 매물로 내놓았다. 중부CC는 더시에나그룹을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하는 등 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애경산업은 가격 눈높이 차이로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평가다. 애경그룹은 양사 매각으로 8000억 원 정도의 현금을 마련해 그룹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제주항공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할 방침이다.
이러한 애경그룹의 재무적 어려움은 비단 제주항공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주사인 AK홀딩스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계열사 대부분이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AK홀딩스의 지난해 별도 기준 총자산은 9758억 원인데, 이 중 외부 차입금은 5049억 원에 달한다. 차입금을 총자산으로 나눈 차입금 의존도는 2020년 22%에서 지난해 52%로 급증했다. 특히 지난해 말 발생한 제주항공 항공기 사고는 애경그룹에게 직격탄이 되어 유동성 위기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애경산업의 경우 지난해 매출 6791억 원, 영업이익 468억 원을 기록하며 흑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2024년 1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6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3.3% 감소했다. 이는 그룹의 모태 사업이자 '알짜'로 불리던 애경산업마저 녹록지 않은 상황임을 보여준다. 애경그룹은 애경산업 매각을 통해 약 6000억 원에서 7000억 원 수준의 매각가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부CC 매각은 홀당 100억 원 이상, 총 2000억 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며 순조롭게 진행되는 모습이다.
제주항공의 주가 전망은 LCC 시장의 성장 기대감과 함께 중국 무비자 정책 등 긍정적인 요인이 존재한다. 반대로 치열한 LCC 간 경쟁과 항공유가 변동성, 최근 발생한 사고의 여파 등으로 불확실성도 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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