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의 계리와 할인율 규제 강화에 올 1분기 국내 주요 보험사의 합산 기타포괄손실이 무려 6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타포괄손실은 분기 순이익에는 반영되지 않지만 지급여력(K-ICS·킥스) 비율 하락으로 이어져 보험사의 자본 건전성에 악영향을 준다. 업계에서는 제도 변화에 따른 킥스 비율 하락 폭이 상당한 만큼 규제 강화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서울경제신문이 국내 3개 생명보험사(삼성·한화·교보)와 5대 손해보험사(삼성·현대·DB·KB·메리츠)의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이들 8개사의 합산 기타포괄손익 누계액(별도 기준)은 3월 말 현재 7882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6조 8818억 원)과 비교하면 88.5%나 폭락했다.
이는 올 1분기 8개사의 기타포괄손실이 5조 9392억 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기타포괄손익은 미실현 항목으로 당장 기업의 이익에는 잡히지 않지만 자본에는 영향을 미친다. 최근 보험사들의 킥스 비율 급감에 기타포괄손실이 한몫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보험업권 전체의 킥스 비율은 경과조치 적용 기준 206.7%로 전 분기 대비 11.6%포인트 하락했다. 생보사는 203.4%로 8.3%포인트 줄었고 손보사는 211%로 16%포인트 감소했다.
기타포괄손익 감소는 보험계약 금융 손실이 급격히 커진 데서 비롯됐다. 8개 보험사의 보험계약 금융 손실은 올해 1~3월 14조 1663억 원에 달해 지난해 같은 기간(7129억 원)에 비해 20배나 확대됐다. 보험계약 금융 손익은 계리·할인율 가정 변경이나 시장금리 변화로 보험계약 가치가 바뀌었을 때 잡는 계정이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금융 당국의 규제 강화와 시장금리 하락이 보험사들의 자본 건전성 지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중 할인율 규제 강화에 대한 업계의 불만이 적지 않다. 보험 부채를 계산할 때 쓰는 할인율을 점진적으로 낮추고 국고채 금리를 최대한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 할인율 규제의 뼈대다.
당국은 보험사의 실적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2027년까지 할인율을 현실화한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서는 규제 강화가 부채를 키우는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보험사의 한 임원은 “할인율 현실화는 부채 산출에만 적용이 되고 자산과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며 “할인율 제도 강화로 자산 대비 부채가 급격히 늘어나고 이것이 기타포괄손익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시장금리 하락은 기타포괄손실을 키워 킥스 비율을 더 끌어내릴 가능성이 있다. 국내 보험사들은 자산의 만기가 부채보다 짧아 금리가 떨어질수록 손실 폭이 커지는 구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30년 금리는 지난해 말 2.973%에서 이달 16일 2.569%로 0.404%포인트나 하락했다. 이 가운데 부채 평가액을 키우는 할인율 규제 강화가 그대로 적용된다면 기타포괄손실이 더 커지게 된다. 금감원도 “최근의 킥스 비율 하락은 기타포괄손익 누계액이 감소한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금융 당국에 할인율 규제를 순차적으로 미뤄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할인율 규제 강화는 킥스상 가용 자본은 물론이고 배당 가능 이익과 금리에 따른 손익 민감도에도 치명적”이라고 강조했다.
업계 내에서도 보수적 추정이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보험사들의 규제 완화 요구에 대해 “업계에서 계속 요청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정해진 사안은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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