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차입금 부담 확대 속 다양한 경로로 자금 조달 창구를 넓히고 있는 SK이노베이션(096770)이 영구채(신종자본증권) 발행을 검토하고 나섰다. 회사의 부채 수준 관리가 핵심 사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배터리 자회사 SK(034730)온에 쏟아부어야 할 자금이 여전히 적지 않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2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국내 대형 증권사들과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위한 협의에 착수했다. IB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여러 곳이 나눠서 인수하는 형태로 논의되고 있다”며 “5000억 원에서 많게는 1조 원까지도 발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IB 관계자는 “원래 2분기 중 발행을 추진했으나 최근에는 규모를 키워 3분기 발행하는 쪽으로 협의 중”이라며 “SK그룹에 대한 증권사들의 익스포저(총 투자액)와 발행사 측 사정을 고려해 발행 여부가 확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이노가 IB들과 이 같은 논의를 시작한 건 최근 높아진 회사의 차입금 수준과 무관치 않다. SK이노는 지난해 말 기준 순차입금이 약 31조 원으로 1년 전 대비 9조 원가량 급증했다. SK온이 보유한 순차입금만 20조 원을 넘어서면서 부담을 키웠다. 지난해 합병한 SK E&S의 차입금이 이관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신종자본증권은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되며 채권에 가까운 성격을 갖고 있어 발행사의 부채비율 관리에 유리하다. 보통 30년 만기로 발행되고 투자자에 일정 수준 이자가 지급된다. 5년 후 발행사가 콜옵션(살 권리)을 행사하고 투자자에게 원금을 지급하는 형태여서 투자자들도 선호하는 편이다.
국내 다수 대기업들도 올 들어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나서고 있다. 연초 롯데컬처웍스(2000억 원), 효성화학(298000)(1000억 원)에 이어 최근 HD현대오일뱅크가 3000억 원어치를 발행했다. SK이노는 만기 30년짜리 신종자본증권 200억 원을 2020년 발행한 게 마지막이었다.
배터리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계속되는 가운데 SK온의 미국 공장 건설에 연말까지 대규모 자금 투입이 예정돼 있다는 점이 최근 SK이노의 조달처 확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SK이노는 신종자본증권 외에도 이달 중순 공모채 발행량을 계획보다 두 배(4000억 원→8000억 원)로 늘리는 등 조달량을 늘리고 있다.
실제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올해 SK이노의 전체 설비투자(CAPAX)는 6조 원 수준이며 이 중 절반 이상이 배터리 분야에 쓰일 전망이다. SK온의 영업손실이 지난해 1조 1000억 원으로 재차 확대됐고 적자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점에서 자체 현금 창출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내년부터 미국 배터리 공장 건설에 신규 투입되는 자금이 대폭 줄어든다는 점은 긍정적 요소로 풀이된다. SK온은 올해까지 대규모 설비 투자를 끝내고 내년에 미국 신공장 가동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그럼에도 전기차 캐즘 기간이 늘고 배터리 수요도 빠르게 올라서지 않으면 고정비 지출이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SK이노가 조달한 자금을 어떤 방식으로 SK온에 지원할지는 추후 협의 대상이다. IB 관계자는 “자회사에 유상증자하거나 대여하는 형태가 우선 논의될 것”이라면서도 “SK온이 직접 영구채를 찍고 SK이노가 신용을 보강하는 방식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SK이노 관계자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다양한 옵션을 검토 중이나 구체적으로 추진하거나 확정된 내용이 없다”며 “SK온 지원에 대해서도 정해진 바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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